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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book

안녕이라 그랬어

by gentletongki 2025. 10. 13.

김애란 단편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 후기: 현실을 후벼파는 서글픔,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진실

김애란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본다는 설렘과 궁금증으로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펼쳤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이 책에는 총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 밝은 내용의 책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 책이 주는 서늘한 정서가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몰랐다" "깊은 곳을 현미경으로 바라보는 듯"

책의 시작인 단편 **<홈 파티>**를 읽고 느낀 점은 솔직히 "글은 참 잘 쓰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단편은 코로나19 시기, 부유한 파티에 초대된 연극 배우 이연이 계급 간 갈등사회적 지배감을 겪는 경험을 예언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공과 우월감을 다루지만, 그 이면의 복잡한 감정선이 처음에는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단편들을 하나씩 읽어갈수록, 작가가 참 깊은 곳을 꼭 짚어 현미경으로 바라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사람의 감정이고, 그것에 억지로 꾸미지 않은 무언가 진짜 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현대인의 인간관계, 현실의 문제, 계급 등과 같이 다 알지만 그것을 참 글로 옮기기 쉽지 않은 주제들을 작가는 풀어냅니다.

7편의 단편이 그려내는 현대인의 서글픈 초상

이 책의 내용들은 뭔가 다 서글프고 즐겁고 재미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인지 나도 이내 수긍하게 됩니다. 작가는 우리가 피하고 싶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의 날카로운 단면을 외면하지 않고 응시합니다.

수록된 7편의 단편은 다음과 같이 현대인의 삶과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 <홈 파티>: 부유한 파티에 초대된 연극 배우 이연을 통해 계급 격차와 사회적 지배감 등 계층 문제를 재조명합니다.
  • <숲속 작은 집>: 에어비앤비 숙소를 배경으로 다문화와 계급, 언어의 차이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다움을 그립니다.
  • <좋은 이웃>: 아파트 재산권과 인근 이웃과의 관계를 다루며, 돈과 욕망, 상처받은 마음 그리고 현대인의 외로움과 소통의 단절을 탐구합니다.
  • <이물감>: 형제간의 부모 간병 문제와 그로 인한 감정의 교차를 통해 마음의 여유와 이해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 <레몬케이크>: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세대 간 차이와, 삶의 무게 속에서도 순수한 위로와 사랑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립니다.
  • <빗방울처럼>: 집과 소유, 그리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경제적·사회적 격차 속에서의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 <안녕이라 그랬어>: 일상의 작은 이별 속에서 ‘안녕’이라는 말과 이별의 의미를 탐구하는 표제작으로, 상실과 희망, 소통과 단절이 교차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인간관계, 현실의 문제, 계급 등과 같이 다 알지만 글로 옮기기 쉽지 않은 주제들로 참 글을 잘 썼습니다.

김애란 작가 문체의 비밀: 고급스러우면서 진부하지 않은 이유

제가 이 책에서 느낀 **"고급스럽지만, 진부하지 않은 문체"**는 김애란 작가의 글쓰기 방식에 기인합니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쓰는 어휘를 사용하면서도, 예측하지 못한 지점에서 세련된 비유를 터뜨립니다. 예를 들어, <레몬케이크>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 세대 간의 차이순수한 위로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은 일상적인 대화체로 진행되지만, 그 안에서 삶의 무게와 불안이 섬세하게 포착됩니다.

 

이러한 문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독자에게 신선한 문학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쉽게 읽히는 문장 호흡 속에 깊은 사유와 서글픈 정서를 담아내는 작가만의 기법이 이 단편집의 전문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입니다.

"나이 드니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 쉽게 찢어지더라"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인상적인 문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이 드니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 쉽게 찢어지더라'

그래, 이런 게 현실입니다. 삶의 굴곡을 지나며 단단해지는 대신, 오히려 더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마음을 이 한 문장이 관통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책 말미 **'작가의 말'**에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저는 이 말로 인해 이 작가가 그리려는 세계에 좀 더 빠져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안다'고 단언하지 않고, '모름'을 통해 역설적으로 진실에 다가서려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줍니다. 쓰리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눈을 감지 않고 현실을 후벼파서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것이 현실이라고 일깨워 주는 그런 작품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김애란 작가의 장편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과연 이런 감정을 담는 작가가 만들어낸 긴 호흡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현실의 서글픔 속에서도 위로와 연결의 실마리를 놓지 않는 김애란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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