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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book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업이 살고 싶다

by gentletongki 2026. 2. 25.

진짜 작가의 목소리를 찾아서

작가와 비작가를 나누는 기준은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그들이 펴낸 책을 펼쳤을 때, 그 안에 작가 본인의 고유한 생각과 목소리가 오롯이 담겨 있다면 그는 작가입니다. 반면, 자신의 철학보다는 남의 좋은 생각과 이야기를 빌려와 채우는 데 급급하다면, 냉정하게 말해 그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콘텐츠를 엮는 사람'인 비작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요.

 

최근 읽은 정태섭 저자의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안타깝게도 후자의 인상이 짙게 남는 책이었습니다. 의사이자 '엑스레이 아티스트'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아직 늦지 않았으니 계획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던지지만, 그 울림이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이유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엑스레이 아트의 미학과 텍스트의 표피성

저자인 정태섭 교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로서 사물의 내부를 투과해 보는 **엑스레이 아트(X-ray Art)**라는 독창적인 분야를 개척한 분입니다. 엑스레이 아트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외면을 넘어 사물의 본질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의 텍스트는 엑스레이가 보여주는 깊이보다는 표피적인 조언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실천론'이 그가 창조하는 예술 작품만큼의 전위성이나 깊은 철학적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 채, "열심히 살자"는 1차원적인 구호로 귀결되는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책 자체가 저자의 예술 활동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용의 나열'이 가져온 작가적 목소리의 부재

좋은 글에는 적절한 인용이 양념처럼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책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각 챕터의 핵심 메시지를 저자 본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통찰로 채우기보다는, 유명인들의 명언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큐레이션'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진정한 작가라면 타인의 문장을 자신의 용광로에 녹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좋은 말들을 수집해 엮어놓았을 뿐, 그 사이를 연결하는 저자만의 독창적인 서사가 부족합니다. 독자는 저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자꾸만 책장 너머 다른 유명인들의 목소리만 들려오는 셈입니다. 이는 최근 출판계에 불고 있는 **'비작가(Non-writer)의 책 쓰기 열풍'**이 가진 전형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자기계발서의 세대교체와 '구식' 조언의 피로감

자기계발서에도 분명 트렌드가 존재합니다. 과거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는 무조건적인 긍정과 열정을 강조하는 '성공학'이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독자들은 더 이상 이런 지리멸렬한 훈계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조언들은 소위 '구식'입니다. 현대의 자기계발서들이 구체적인 시스템 설계나 심리학적 기제를 바탕으로 세련되게 접근하는 반면, 이 책은 "늦지 않았다, 실천하라"는 식의 너무나 뻔하고 촌스러운 방식을 고수합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너무 길게 늘어놓으면 구수하기보다 진부하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이 책이 바로 그러한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성공 서사가 독자에게 주는 심리적 괴리

책 곳곳에 담긴 저자의 경험담은 조언이라기보다 자기자랑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전문직 종사자로서 거둔 성취를 바탕으로 "나처럼 해보라"고 말하는 서사는, 독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이질감을 만들기 쉽습니다.

 

독자가 자기계발서에서 기대하는 것은 저자의 완벽한 삶이 아니라, 그 삶을 일구기까지의 치열한 고뇌와 실패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자신의 성공을 자기계발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안은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성공 서사의 피로도'**는 독자로 하여금 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반면교사의 독서: 내 방식대로 사는 삶의 확신

비록 책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는 후회가 남는 독서였지만, 이 책은 제게 뜻밖의 수확을 안겨주었습니다. 바로 **"내 인생은 내 방식대로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확신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존재하고 각기 다른 성공 방정식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과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쓴 낡은 조언들에 휘둘리기보다는, 비록 서툴더라도 나만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후회 없는 삶'으로 향하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는 과정 또한 나의 가치관을 더욱 선명하게 다듬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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