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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book

키메라의 땅 1

by gentletongki 2025. 9. 17.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시 한번 믿어본 '키메라의 땅' 1권 후기

솔직히 말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오랜 팬으로서 전작 **'퀸의 대각선'**을 읽고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저에게 그 작품은 베르베르 특유의 기발함 대신 난해하고 불편한 인물들, 그리고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서사로 가득 차 있었죠. 그래서 이번 신작 **'키메라의 땅'**은 망설여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를 향한 오랜 기대감, 그리고 '키메라'라는 제목이 주는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다시 한번 그의 세계로 발을 들였습니다.


'키메라의 땅', 줄거리와 새로운 시작

**'키메라의 땅'**은 제목에서부터 강렬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키메라, 즉 여러 종의 유전자를 결합한 생명체를 뜻하는 이 단어는 작품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이야기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며 새로운 신생 인류를 만들고자 하는 진화 생물학 교수 알리스 카메러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는 현 인류의 반대에 부딪혀 우주로 떠나 연구를 이어가지만, 그가 없는 사이 지구는 3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됩니다.

 

폐허가 된 지구로 돌아온 알리스 카메러는 세 종류의 신인류 배아를 들고 지구에 귀환합니다. 이들은 인간과 박쥐의 유전자를 결합한 '에어리얼', 인간과 두더지의 유전자를 결합한 '디거', 그리고 인간과 돌고래의 유전자를 결합한 '노틱'으로, 각각 공중, 땅속,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권은 이들이 탄생하는 과정과 함께 지구를 재건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이야기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익숙함 속의 낯섦, 그리고 아쉬움

오랜만에 만난 베르베르의 작품은 여전히 그의 시그니처와 같은 흥미로운 설정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과 다른 종을 결합해 신인류를 탄생시킨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특히 **'개미'**를 통해 보여주었던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상상력이 이번 작품에서도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후기를 쓰기 위해 1권을 덮은 지금, 솔직히 말해 아쉬움이 더 크게 남습니다. 예전 **'개미'**나 **'고양이'**에서 느꼈던 디테일하고 생동감 넘치는 서사에 비하면, 이번 작품은 다소 공상에만 기댄 채 얕은 감각으로만 전개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1권이 이제 막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단계이기에, 앞으로의 전개를 속단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쩌면 '퀸의 대각선'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한 저의 기대치가 낮아졌을 수도 있고, 혹은 제가 기대하는 '예전의 베르베르'의 모습에만 갇혀 새로운 시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진화인가, 퇴화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서사 방식 변화

**'키메라의 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개미'**와 **'고양이'**가 떠올랐습니다. 이 두 작품은 특정 종의 시점에서 인간 사회를 비추는 독특한 서사 방식을 취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과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과거의 세밀한 관찰과 치밀한 서사 대신, 거대한 스케일과 공상과학적 설정에 초점을 맞춘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미'가 개미라는 작은 생명체의 생태를 통해 인류 사회의 모순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면, '키메라의 땅'은 **'신인류'**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그 속의 디테일과 생동감을 놓친 듯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치 과거의 '개미'와 '고양이'가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듯 미시적인 접근을 했다면, '키메라의 땅'은 망원경으로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서사의 스케일은 커졌지만, 그 안의 생동감은 희미해진 느낌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작가의 새로운 시도일지, 아니면 '퀸의 대각선'에서 시작된 작가적 고민의 연장선일지는 2권의 내용에 따라 판가름 날 것입니다.


신인류라는 주제, 과학 소설이 던지는 철학적 화두

**'키메라의 땅'**은 단순히 흥미로운 SF적 상상력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작품은 우리에게 **'신인류'**라는 개념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과연 현생 인류의 DNA를 조작하고 다른 종의 DNA와 결합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까요? 이들은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고민은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키메라의 땅'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과학자의 시점을 통해, 생명 윤리와 과학 기술의 발전이라는 딜레마를 함께 탐구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도전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죠.


그럼에도 다음을 기대하며

'키메라의 땅' 1권은 분명 전작 **'퀸의 대각선'**보다는 훨씬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1권의 끝에서 새로운 인류의 흥미로운 행보가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며 마무리되는 만큼, 과연 2권에서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를 해봅니다. 새로운 종들의 탄생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지, 그리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려낼 결말이 어떤 모습일지, 다음 책을 손에 쥐게 될 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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